
BRC의 김창준(왼쪽), 신귀현 공동대표가 서울 종로구 명륜동 사무실에서 산업용 PC를 들고 웃고 있다. | |
직원 10명의 벤처기업이 큰일을 해냈다. 산업용 PC 제조업체 BRC는 6월 초 국내 최초로 전면(前面)이 산업용 방수·방진(防塵) PC인 ‘BWP-A700T’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. 자동차·식품·제약 등 국내 생산현장에서는 지금까지 대만제 방수·방진 PC가 사용돼 왔다. 이번에 개발된 BWP-A700T는 일체형 PC(모니터와 PC가 결합된 제품)로 터치스크린 방식이다. 글로벌 방수·방진등급(국제전기제품 외함 보호구격)인 IP등급 65도 받았다. IP등급 65는 모든 방향에서 나오는 물과 먼지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.
BRC의 신귀현(39) 공동대표는 “BWP-A700T는 7월 초 현대자동차 계열사와 산업설비 자동화업체 삼익THK에 납품된다”며 “식품 대기업과 대형 제약업체와도 납품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”고 말했다. 김창준(39) 공동대표는 “올해 1000대 판매가 목표”라고 밝혔다.
신 대표는 패키지 디자인 전문업체 디자인피플의 디자인팀장으로 일했다. 청정원 김, 웅진식품 후레쉬업의 포장지를 만들었다. 김 대표는 글로벌 모니터업체 대만 AOC의 국내 총판사였던 올링스미디어에서 연구개발팀장을 역임했다. 두 사람은 2005년 올링스미디어의 모니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 인연을 맺었고, 2007년 BRC를 공동창업했다.
BRC는 처음엔 대만의 산업용 방수 PC를 수입해 차병원 차움스파·한독약품·SPC그룹·르노삼성 계열사 등에 공급했다. BRC의 지난해 매출은 약 15억원이고, 내년에는 100억원 돌파가 목표다.
국내 1호 산업용 방수·방진 PC의 개발을 제안한 이는 신 대표다. 지난해 여름 수영장에서 유행했던 디지털카메라 방수케이스 ‘디카팩’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. 디카팩은 디지털카메라 모양의 투명한 비닐케이스다. 이 팩에 디카를 넣으면 물속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. 신 대표는 “디카팩 원리를 산업용 PC에 적용하면 방수·방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”고 했다.
관건은 산업용 PC를 어떻게 팩에 담느냐였다. 이번엔 김 대표가 나섰다. 김 대표와 연구팀 6명은 200만원에 달하는 대만제 산업용 방수·방진 PC 수십 대를 일일이 분해했다. 수천만원을 날렸지만 비법을 찾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. 그 과정에서 얇은 필름 한 장으로 방수·방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. G11로 불리는 방수·방진 필름이 비법이었다.
그러나 문제가 또 있었다. 필름의 적절한 두께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. 방수·방진 필름의 두께가 얇으면 제품 안전성이 떨어졌다. 필름이 쉽게 허물어졌기 때문이다. 필름이 두꺼우면 터치가 쉽지 않았다.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한 김 대표와 연구팀은 6개월 만에 최적의 두께를 찾았다. 약 2㎜였다(※ 김 대표는 영업비밀이라며 정확한 두께는 밝히지 않았다). 김 대표는 “산업용 PC의 스크린에 2㎜ 두께의 방수·방진 필름을 붙이자 내구성은 좋아지고 터치감은 떨어지지 않았다”며 “2㎜의 비밀을 발견했을 때 눈물을 훔치는 직원도 있었다”고 회상했다.
우여곡절 끝에 개발한 BWP-A700T의 모델은 팬리스(fanless)와 듀얼코어 제품 등 두 개다. 팬리스 제품은 먼지가 날리지 않고 열이 적게 난다. 듀얼코어는 빠른 처리속도가 장점이다.
산업용 PC 세계 시장은 연간 50억 달러 규모. 신 대표는 “BWP-A700T를 통해 우선 대만 제품이 휩쓸고 있는 국내 산업용 PC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”고 포부를 밝혔다. 김 대표는 “BWP-A700T 가격은 100만원대 초반으로 대만 제품의 60% 수준”이라며 “이를 발판으로 산업용 PC시장에 낀 가격 거품을 빼는 게 1차 목표”라고 말했다.